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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은 삶 Life is but a dream 중력이 끌어당기는 단단한 지면, 원근의 관계가 오차 없이 계산된 공간, 그리고 뒤틀림 없이 흐르는 시간은 편안한 일상의 삶을 지탱한다. 시각의 중심으로서 흔들림 없는 주체라던가 진보를 향해 흐르는 선형적인 시간과 같은 보편적인 전제로부터, 일찍 일어나는 새가 굶지 않는다는 소소하지만 굳건한 믿음까지; 세상을 예측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 의심의 여지 없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우리가 믿는 그대로 보이는 현실 말이다. 전제가 정교해질 수록, 믿음이 보편화 될수록 시스템의 질서는 매끈하게 구멍 없는 현실로 표상된다. 반자동화된 일상이 미래의 가능성을 몇 가지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 환원시킨 덕분에, 그 안에 주어진 길을 따라 흐르는 우리는 매 순간 갈림길에서 경우의 수를 계산하거나 눈 앞에 펼쳐진 선택지들 앞에서 요행에 운명을 던져야만 하는 불안으로부터 해방된 듯하다. 그러므로 시점이 미묘하게 흔들리거나 공간감이 미세하게 깨지는 화면, 시간이 버퍼링하듯 같은 장면이 반복되었다거나 하나의 시공간에서 같은 대상이 여럿 목격 되었다는 괴담들은 절대적인 시스템에는 있을 수 없는 오류로서 막연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예측할 수 있는 현상으로 계산되지 않은 것들 (인과관계로 특정되지 않는 징후들, 글리치, 그리고 재난), 그러니까 가능의 영역 밖에서 이야기되지 않던 것들이 순간 눈앞에 드러날 때 일상은 불길하게 파열된다. 노동과 소비의 패러다임 속에서 태만과 방황 또한 비일상적인 것으로서 흉하다. 소속 없이 도시를 떠도는 이들은 모자이크 처리되고, 산책자의 시선은 번역될 수 없는 이방인의 소음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곳곳의 허공에 나타나 커터칼로 나무를 깍거나 연필로 나뭇잎에 끄적이는 몸 없는 손들, 공터에 드러누운 동시에 서 있는 한 사람, 강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건져 올리는 사람이 있는 최모민의 풍경은 일상의 흐름을 흐트러뜨리며 불안한 징조를 울린다. 작업실과 집을 오가는 작가의 일과 속에서, 목적지를 향하는 경로상의 익숙한 장소들은 행위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무목적적 행위들이 흩뿌려진 낯선 풍경으로 그려진다. 그가 그린 일상적 풍경 속에 일상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선형적인 시간과 예측 가능한 인과관계는 정지되었다. 개연성 없는 사건을 구성하는 인물, 식물, 사물들은 익숙한 도시의 풍경과 미묘한 부조화를 이루며 일상으로부터 살짝 미끄러진 생경한 장면을 이룬다. 강물 속 돌이 되어버린 남자, 눈더미를 뒤집어쓴 채 눈밭에 숨어 있는 사람, 쓸데없이 보도블록에 물을 주는 사람은 일상의 속도를 기묘하게 정지시킨다. 화면 안에 그려지는 인물과 사물들은 사건을 이루는 대신 장소에 놓인 다른 것들과 함께 풍경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의 풍경에는 역설적으로 (무슨 일이 곧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이) 모든 가능성으로 포화된 공기가 무겁게 깔려 있었다. 어떤 사건에 대한 징후로 특정될 수 없는 장면들은 아직 가능과 비가능으로 범주화되지 않은 모든 잠재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비일상의 풍경을 이룬다. 새의 시체, 깨진 컵, 과일, 꽃 등 바니타스의 도상과 세례 의식, 허공에서 쏟아지는 광선과 같은 종교화의 도상이 눈에 띄게 화면 위에 드러나는 최근의 신작들도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도식화된 시각적 기호들은 도시의 익숙한 풍경 속에 개연성 없이 삽입되어 있다. 맥락과 무관하게 의미로 박제되어버린 대상과 행위들의 시간은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던 시간 만큼이나 중력 없이 풍경 속에 떠 있다. 무심하게 덧붙여진 이종의 이미지들은 일상적 공간감을 미묘하게 틀어버린다. 세상의 무상함과 존재의 유한함을 이야기하는 알레고리는 초월적인 구조의 무한함을 경이롭게 강조하는 장치였지만, 일상적 질서가 미묘하게 어긋난 풍경 안에서 이들은 도리어 완벽하지 않은 시스템이 작동 정지되는 오류의 순간을 허옇게 드러내고 만다. 눈 뜨고 집 밖으로 나가 일터로 왕복하는 일과 속에서 눈앞에 보이는 형태, 몸짓, 그리고 관계들은 사실 효용성이라는 현실의 어떤 질서, 공동의 믿음 외에는 아무런 개연성 없이 병치되어 있을 뿐이다. 당연하게 일상을 이루는 것들이 당연하게 일상에서 탈락한 수많은 형태와 이름들보다 더 견고하진 않은 것 같다.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익숙한 사건들이 생경한 해프닝보다 더 필연적일 것도 없어 보인다. 눈앞의 현실로서 보여지는 것들은 우리가 믿고 있는 시스템이 드러낸 하나의 선택된 가능성일 뿐이지 않은가. 최모민이 그리는 개연성 없는 관계들과 생경한 해프닝의 꿈 같은 이미지는 삶의 대안으로, 또는 피안으로 현실의 경계 바깥에서 반짝이는 허구나 이상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우리가 현실이라 공고하게 믿는 어떤 시스템이 드러내는 한 가능성 밑에 은폐된 잠재들처럼 가까이에서 불길하게 꿈틀댄다. 그러니까 이란 우리가 일상이라 믿는 환영의 균열된 틈 사이로 순간순간 드러나는 비일상의 카오스, 특정할 수 없는 파국의 징후들이 곳곳에 잠재해 있는 익숙한 구조의 불확실한 이면일 것이다. 아웃사이트 큐레이터 임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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